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세기의 발견, 최악의 발굴 무령왕릉
국내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굴이자 최악의 발굴로 꼽히는 무령왕릉이다. 출토된 유물들의 내용과 더불어 고대 무덤의 주인을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최고라 꼽히지만, 엄청난 발견에 지나친 관심이 쏠린 나머지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현장을 출입하는 기자들로 인하여 유물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해 최악으로 기록되고 있다. 무령왕릉이 발견되지까지 고대의 무덤 중에서 그 주인이 밝혀진 경우가 없었으니 이곳에서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이라는 지석의 발견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흥분 그 자체 였다.
고구려의 전쟁에서 팽하고 신라와의 협력마저 깨어지면서 항강유역을 잃어버린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다. 다시 나라의 기반을 세우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게되는데 그 시기가 바로 백제 25대 앙인 무령와 때이다. 무령왕릉은 벽돌로 만들어진 전축분이며 당시 중국 남조의 무덤양식을 받아들여 만든 무덤으로, 입구에서 방까지 긴 연도를 만들고 그 끝에 있는 방에 부부가 합장되어 있는 형태이다. 연꽃 모양을 새긴 벽돌은 당시 불교적 세계관에서 무덤이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100여 종 3,000여 점에 이르며 대부분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옛날에는 무령왕릉 내부를 공개하여 직접 들어가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보호차원에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대신 아래쪽에 전시관을 만들어 놓고 무덤 내부의 모습과 그 안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살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