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기리는 맑은 터 법흥사
사자산과 백덕산이 함께 만드는 법흥천 계곡은 맑고 푸름을 자랑한다. 아직 오염되지 않는 예곡을 따라 산을 오르면 나타나는 법흥사의 모습은 마치 감로수를 흘려 보내는 부처님의미소를 보는 듯한다. 옻, 꿀, 삼, 먹을 수 있는 흰빛 흙인 백토의 사재(四財)가 산을 찾는 이들을 배고프지 않게 한다는 이곳은 신라 시대의 고승 자장율사가 사자를 타고 들어와 사자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해진다.
법흥사는 통일 신라말기 계율을 중요시하는 귀종층의 불교 사상인 교종에 대항하여 참선을 중요시하고 서민적인 선종 세력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사자산무파의 중심이었다. 법흥사에는 극락전 뒤편으로 자장율사가 홀로 토굴에 들어가 참선수도하였다는 장소가 있다. 그리고 토굴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언덕은 백더산 자락으로 부터님의 진신 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다.
문수보살이 고승의 모습으로 환생하여 붕국유학을 나선 자장율사에게 전했다는 진신 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당시 그 몸에서 나왔다는 여덟 말의 사리 중 일부였다.
부처님의 육체가 담긴 사리는 그의 말씀이 법문으로 남겨진 경전(법보), 행동으로 사상을 실현하는 스님(승보)과 함께 불교 최고의 보물(불보)로 보살핌을 받는다.
자장율사가 모셔온 진신 사리는 다섯 묶음으로 나위어져 통도사의 금강계단, 오대산의 중대암, 설악산으 봉정암, 태백산의 정암사 그리고 사자산 법흥사에 모셔졌다.
두 분의 부처님을 모실 수 없기에 법흥사의 대웅보전이 되는 극락전은 뒤편 언덕을 바라보는 창문을 만들었을 뿐 볼상은 세우지 않았다. 창문 너머 바라보이는 백던산 자락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는 듯하다. 전나무숲에 둘러싸인 경내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함께 담아내는 듯 포근함으로 가득하다. 사찰뒤편으로 이어지는 사자산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며 원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