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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수도권

서울 덕수궁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해 왕족의 사가였던 이곳을 행궁으로 삼으로면서 궁궐의 역활을 하게된다.

선조가 이곳에서 머물다 승하아였으며 이어  다음 왕인 광해군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이곳을 나가 창덕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부터 경운궁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가 유폐되기도 했으며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즉위한 곳이기도 하니 경운궁은 조선 중기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라 하겠다. 


덕수궁은 200년 동안 비어 있다가 고종 때부터 다시 궁궐의 역활을 하게 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이러나자 고종은 당시 머물렀던 경복궁을 떠나 러이사공관으로 피신을 하였다가 다시 환궁을 하게 되는데  경복궁을 놓아 두고 이곳으로 왔던 이유는 당시 이곳 주변이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있던 자리라 위급한 경우 안전하게 피신하기 위었기 때문으로,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다른 나라에 안전을 의탁해야 하는 처지가 당시 조선의 상황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라 칭하여 황제국임을 선포한다. 하지만 러일전쟁 등에서 승리한 일본은 점점 조선을 압박하게 되고 결국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이유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왕으로 등극시킨다. 그러면서 궁궐의 이름은 경운(慶運)에서 '덕을 누리며 오래 살라'는 의미인 덕수(德壽)로 바꾸었으니, 조선왕조의 운명과 함께 이곳의 이름이 바뀌게 된 셈이다. '덕수'라는 이름 그대로 오래는 살았을 지언정 편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고종은 1919년 1월 함녕전에서 숨을 거둔다. 


경운궁 정문에는 원래 '대안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으나 불난 경운궁을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며, 원래 2층 건물있어떤 정전인 중화전도 다시 지으면서 1층으로 만들어져 다른 궁궐에 비해 소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근대사의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장으로, 불과 100년 전에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한다면 덕수궁에서 느끼는 의미는 다른 궁궐에서보다 더 크게 와 닿는다.




대한문






중화문








내부에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멀리서 망원으로 잡은 사진... 일월오봉도가 눈에 띈다.














큰 은행나무에서 뿌리를 내린 나무



















수문장 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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