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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수도권

비원이라 불리웠던 창덕궁의 후원 금원

본래 창덕궁의 후원으로 후원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이라는 명칭은 일제 때 용어이다. 〈태종실록〉에 1406년(태종 6) 4월 창덕궁 동북쪽에 해온정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원은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459년(세조 5)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을 세웠다.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여 경계가 거의 성균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과 함께 후원도 불타버렸으나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 이때의 모습이 왕조실록의 주해에 기록되어 있는데 "기이한 화초와 괴석들을 늘어놓고 원유의 꽃과 돌 사이의 곳곳에 작은 정자들을 만들어 그 기교하고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일찍이 없었다"라고 했다. 

1636년(인조 14)에 지금의 소요정인 탄서정, 태극정인 운영정, 청의정 등을 세웠고, 청의정 앞쪽 암반에 샘을 파고 물길을 돌려 폭포를 만들었으며 옥류천이라는 인조의 친필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1642년에는 취규정을, 1644년에는 뒷날 관덕정인 취미정을, 1645년에는 희우정인 취향정을, 1646년에는 청연각인 벽하정을, 1647년에는 취승정과 관풍정을 세웠다. 1688년(숙종 14)에는 청심정과 빙옥지를, 1690년에는 술성각 옛 자리에 사정기비각을 세웠다. 1704년에는 대보단을 축조했고, 1707년에는 택수재를 세웠다. 1776년에는 왕실의 도서를 두는 규장각을 세웠는데 이는 주합루라 부르는 중층 누각이며, 그 아래 연못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택수재를 지금의 부용정으로 고쳤다. 1828년(순조 28)에는 사대부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후원 안의 개금재 자리에 연경당을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는 선원전을 지었다. 


후원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영역은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주합루·영화당·사정기비각·서향각·희우정·제월광풍관 등의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다. 둘째 영역은 기오헌·기두각·애련지·애련정·연경당이 들어선 지역이다. 셋째 영역은 관람정·존덕정·승재정·폄우사가 있는 지역이다. 넷째 영역은 옥류천을 중심으로 취한정·소요정·어정·청의정·태극정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도 청심정·빙옥지·능허정 등이 곳곳에 있다. 후원의 구성은 낮은 야산과 골짜기 그리고 앞에 펼쳐진 편평한 땅 등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을 가해 꾸며놓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조원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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