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광산으로 개발되었던 광명동굴은 점차 은, 구리, 아연 같은 다른 광물도 채광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을 기준으로 광명동굴 내 광물의 총 매장량은 1만 9,000천 톤으로 추정되며 당시 석탄공사 자료에 따르면 1955년 부터 폐광된 1972년까지 52kg의 황금을 생산한 것으로 기록되었 있으며 광산채광을 시작한 1912년부터 1955년까지는 수백kg이상의 황금이 채굴된 것으로 추청된다.
1972년 폐광도 홍수에 의한 것이어서 지금도 동굴에는 많은 양의 황금이 묻혀 있다는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광명굴은 1912년 일제강점기에 광산이 설립 및 채굴을 시작하였다.
수도권 최대의 금속광산으로 1912년 부터 약 60년간 금,은,동, 아연 등을 생산하던 광산은 전성기때에는 채굴량이 하루 250톤이 넘었던 수도권 최대의 금속광산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광부로 근무를 하면 징용을 면제해주었고 가족을 부양했던 많은 사람들이 광부로 근무해 서민들의 애환이 깃근 곳이다.
625때는 마을 주민이 피난했던 피난처로 사용되었고 1961년과 1962년 사이 시흥광산에서 벌어진 노동운동은 광명지역 최초의 노동운동이었으며, 이는 516쿠테타 이후 발생한 첫 노동운동이기도 하다.
1972년 폐광이후 소래포구의 새우젖 저장소를 2010년까지 사용되다가 2011년 미간에게 개방되었다.
광명굴 입구의 조형물..
광명굴이 일제때 수탈의 현장인만큼 이곳에도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광산노동자의 모슴
'여행지 > 수도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 조계사 (0) | 2016.03.05 |
---|---|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 (0) | 2016.03.01 |
비원이라 불리웠던 창덕궁의 후원 금원 (0) | 2015.11.18 |
창덕궁 (0) | 2015.11.15 |
강화 장화리일몰조망지 (0) | 201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