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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전남권

진도 남도석성(남도진성)

사적 제127호. 둘레 54m, 지정면적 20,169㎡. 고려 원종 때 배중손(裵仲孫)이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으면서 쌓은 성이라고 전한다. 진도군에는 백제시대에 이미 3개 고을이 있었는데, 그 중에 진도군에 속한 것이 도산현(徒山縣 : 지금의 嘉興)과 매구리현(買九里縣 : 지금의 臨准)으로, 매구리현의 중심이 구도포(九桃浦)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러한 고을들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3세기 초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왜구가 연해지방을 노략질하므로 1350년(충정왕 2)에는 진도의 관부(官府)와 백성들이 세종 초까지 내륙지방으로 피하여 살다가 귀향하였다. 남도포(南桃浦)에 만호부(萬戶府)가 처음 생긴 것은 1438년(세종 20) 정월의 일로, 이로 미루어 보면 현존하는 성은 그 뒤에 쌓은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남도포성은 동쪽에 있는 금갑보(金甲堡)와 더불어 명양(鳴洋)으로 돌아가는 바닷길의 요새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북상하는 위치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1555년(명종 10) 5월 서해안으로 북상하던 왜적들에게 남도포와 금갑보가 분탕질당한 경우도 있고, 또 이곳의 만호들이 그들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1683년(숙종 9) 6월에는 육군의 진관체제(鎭管體制)와 같은 수군진관(水軍鎭管)을 현재 전라남도의 위도(蝟島)와 가리포(加里浦)에 두었는데, 남도진(南桃鎭)은 가리포진관에 딸린 수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남도석성의 본래 규모는 둘레 1,233척, 높이 8척이고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고 하며, 또한 1765년(영조 41)에는 둘레 1,040척, 높이 12척, 치첩(雉堞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이 43개나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성터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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